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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시/에세이

예언자 - 카릴 지브란 (2013-20)




모처럼 여려운 책을 접했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매우 친숙하지만 그 해석의 깊이와 사유의 높이는 나를 조금은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래서 책을 손에 든 독자는 심호흡과 함께 숙독하려 해야할 것이다. 그래야 책을 읽는 보람과 유익을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

이별의 장면으로 출발하는 초반에는 나는 저자의 말하는 방식을 따라 잡으려는데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래서 어쩌면 초반부의 내용을 조금 더 경솔하게 이해하고 넘어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모든 신경을 집중하듯 했으니 시작보다 끝이 더 좋아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종교적인 격식을 갖춘듯 엄숙하고 때로는 웅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교훈처럼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미숙함을 드러낸 증거였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한 것이면서 삶이 진정한 삶으로 까지 성장하도록 돕는 예언자의 인도였다. 그러므로 이 책의 분위기를 이유로 마지막 장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었야 겠다.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지만.

 


책 속에는 무수히 많은 시간과 공간이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는듯 하다. 그것은 저자가 깨달은 바에 대한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이유였고 그가 한 사색의 수준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리적으로 형상화 하는 일이라면 아마도 큰 건물에 지나지 아니하였을테지만 이것은 저자의 생각을 형상화 하는 것이었으므로 무한의 경지에 까지 독자를 이끌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저자로 부터 독자에게 이전되어 여전히 독자의 가슴에 의미를 남게하는 특별한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지혜는 보통  <시>를 도구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카릴 지브란의 책 <예언자>도 같았다. 전체적으로 시적인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고 그래서 함축적이며 그래서 무한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던것 같다. 아울러 독자는 그 의미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재해석도 가능케 했으리라. <시집>이라 하여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 때문에 <지혜서>라 할만하다. 

나에게 <예언자>는 나의 책읽기에서  쉬어가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덮을 때에는 결코 쉬었다는 느낌이 아닌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수고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늘날의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가벼움 보다 무게감을 갖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만난 것은 분명 나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역자는 이 책을 수없이 많이 읽어가면서 숙독했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책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고 또 그 안에 의미를 배우기 위해 또 다시 이 책을 손에 넣을 것이다. 카릴 지브란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지혜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책으로서 함께하는 친근한 선생일 것이기에.